신석기시대 식. 의. 주와 유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신석기인들은 그 전시대와는 어떤 점이 다르고 어떤 발전들을 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유적지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신석기시대 식. 의. 주
신석기시대의 식. 의. 주는 과연 구석기시대와 어떻게 다를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이 당시도 당연히 채집과 수렵을 한다. 그렇지만 이때 아주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그 놀라운 변화가 무엇이냐면 구석기시대에는 자연이 주는 대로 인간은 그냥 수동적인 존재였다. 자연이 안 주면 죽거나 떠나거나 이동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신석기시대가 오면서 드디어 자연이 주는 대로 먹고사는 그런 존재에서 이제 자연을 통해서 자연을 개발해서 우리가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바로 농경과 목축의 시작이다. 그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한 농경은 밭농사이다. 이 농경의 시작은 정말 어마어마한 혁명이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신석기혁명'이라 이야기한다. 신석기 혁명을 통해 구석기시대의 이동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변화하게 된다. 신석기시대의 인류는 자연을 개척하는, 자연을 활용하는 그런 인류로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처럼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래서 우리가 많이 편리해지긴 했는데 자연을 활용하고 자연을 개척하는 신석기인의 어떤 전통을 우리는 지금 갖고 있지만 너무 많이 개척하고 너무 많이 활용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어떤 그런 모습들이 아닌 너무나도 자연 우위에 들어가 있는 그런 우리의 모습들은 아닐까 라는 생각 말이다. 어쨌건 그러한 어떤 출발점들을 신석기시대부터 출발했다고 보면 된다. 신석기시대의 옷은 이때부터 조금 더 기술이 발전했다. 그래서 원시적 수공업, 좀 다른 말로 얘기한다면 직조 기술이다. 실을 갖고 옷감 같은 것들을 만드는 그런 기술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바탕으로 옷이나 그물 같은 것들을 해 입을 수 있었다. 이런 옷이나 그물 같은 것들을 해 입을 수 있었던 근거자료가 뭐가 있냐면 유물에는 뼈바늘이라든지 가락바퀴가 있다. 뼈바늘은 뼈로 만든 바늘이고 가락바퀴는 실을 감는 도구이다. 이런 걸 통해서 이 당시에 실을 통해 가지고 어떤 옷감을 만드는 원시적 수공업 이런 것들이 가능했구나라는 것을 우리는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구석기시대에는 그냥 동물 사냥 끝난 뒤에 대충 두르는 그런 모습에서 신석기시대에는 식물을 이용해 가지고 실을 만들어서 그런 것들로 이렇게 옷을 해 입는 모습들 기억하면 되겠다. 그다음 신석기인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구석기인들은 동굴이나 막집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신석기인들은 바로 움집에서 살았다. 움집은 주로 강가나 바닷가에 있었다. 여기는 흙들이 많이 무르니까 땅을 파기가 쉬웠다. 그냥 땅을 파 가지고 거기서 기둥 같은 거 세운 다음에 움집을 만들고 가운데 화덕 놓고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그런 모습들을 떠올리면 되겠다. 움집의 형태는 모두 원형에 가까운 지상 가옥이며, 바닥은 3~10cm 두께로 잔자갈이 섞인 점토를 여러 겹 다져 만들었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주거지 중앙에 한 개씩 만들었고, 주거지 내부 중앙에 기둥을 받쳤던 것으로 보이는 받침돌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지금의 텐트를 생각하면 된다. 요즘은 캠핑을 많이 가는데 신석기인들의 체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신석기인들의 생활 모습들이 지금의 우리 캠핑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게 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잠자는 거 바람 피하고 비 피하는 거 그런 기능 이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2. 신석기시대의 유적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부산에 있는 동삼동 패총이 있다. 패총이 뭐냐 하면 '조개 패'자이다. 조개껍질을 다 모아 놓은 곳이다. 강가나 해안 가니까 조개가 많이 나와 그 조개들을 캐다 먹었는데 문제가 뭐냐 하면 조개껍질은 위험했기 때문에 발이 스치면 베이고 다치는 것이다. 그래서 신석기인들은 그 조개를 다 먹은 다음에 조개껍질을 한 곳에 모아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개껍질들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유적지로 발견된 것이다. 그다음 서울에 암사동 유적지가 있다. 이 암사동 유적지는 어떻게 발견됐냐 하면 한강이 넘치면서 장마저 가지고 발견이 된 것이다. 이 암사동 유적지도 한강에 있는데 장충고등학교가 야구로 유명한데 야구장터를 이곳에다 만들려고 개발하다 보니까 유적지가 많이 나오게 되면서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문화를 공부한다고 할 때는 암사동을 많이 가는데 한번 가서 신석기인들의 모습들을 유추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